자작시

나는 비로소

김형순 '스키타이' 2023. 3. 1. 16:58
 

나는 비로소

말 한마디 할 기력도 없을 때

난 시인이 된다

 

손 한 번 흔들어 볼

기운이 없을 때

나는 구름이 되고,

바람이 되어 흐른다

 

몸이 흐느적거릴 때

머리가 은(銀)처럼 맑아진다던

한 시인의 말이 떠오른다

 

시는 몸에서

열․힘․혼을 다 빼놓곤

한 줌의 바람 같은 말을 주고.

한 줄기의 섬광(閃光) 같은 꿈을 준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같은

시와 환희와 열락과 함께

죽음의 유혹과 삶의 엑스타시를 준다

 

몸이 허물어질수록

빛은 강해지고, 창은 열린다.

1997. 02. 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