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단상(斷想) 2

백남준의 은하계 속에 살다

[백남준 하면 떠오른 단상들 001 우리 모두는 백남준의 은하계 속에 살고 있다] 워싱턴에 있는 미국 스미소니언 국립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존 핸하르트'는 "아이폰은 백남준의 아이디어다"라고 말했다. 백남준은 1963년 첫 전시에 TV를 등장시키다. 이것을 불통이 아닌 쌍방(two-way) 소통의 도구로 삼았다. 이것이 바로 인터넷의 시작이다. 1969년 일본의 기술자 아베와 공동으로 비디오 편집기를 완성한 후 1970년에 인터넷의 초기 형태인 '비디오 코뮌'을 발표했다. 그리고 1973년 '1인 미디어세상'을 예언했다. '글로벌 그루브'라는 인터넷 개념의 탁월한 비디오 아트 만들었다. 거기에서 동서의 다양한 콘텐츠가 담겼다. 1974년에는 록펠러 문화재단에 '전자 초고속도 프로젝트'를 제출해 기금을 받..

시를 써 본지 40년

내가 군대 늦게 가 1980년 01월 10일 제대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처음 시를 써봤다. 그리고 40년 지났다. 그런데 제대로 된 시가 한 편도 없네요!! ㅎㅎ 시를 쓰게 된 동기는 1970년 나에게 너무나 큰 존재였던 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10년간 고민을 했다. 인간의 죽음과 고통은 어디서 오는가? 삶의 의미는 뭔가? 일종의 바니타스(vanitas) 극복을 위한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꼭 10년간의 물음 끝에 답이 나왔다 "고통이 구원이다" 이것은 사실 삶에 대한 내 나름의 수준 높은 긍정이었던 것이다 니체가 말하는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과 비슷한 생각이다. 그때부터 시를 쓰다. 그런데 이런 고민은 2500년 전 부처가 이미 했던 것이다. 부처가 내놓은 대안은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