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희랍어 시간 맨 마지막 시 나는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은다. - 희랍어시간 맨 마지막 장(시)혀끝으로 아랫입술을 축인다.가슴 앞에 모은 두 손이 조용히, 빠르게 뒤치럭거린다.두 눈꺼풀이 떨린다. 곤충들이 세차게 맞비비는 겹날개처럼.금세 다시 말라버린 입술을 연다.끈질기게, 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쉰다.마침내 첫 음절을 발음하는 순간, 힘주어 눈을 감았다 뜬다.눈을 뜨면 모든 것이 사라져 있을 것을 각오하듯이. 기성시 2025.01.19
[박용래] 먼 바다 -박용래 먼 바다 -박용래마을로 기우는언덕, 머흐는구름에낮게 낮게지붕 밑 드리우는종소리에돛을 올려라어디메, 막 피는접시꽃새하얀 매디마다감빛 돛을 올려라오늘의 아픔아픔의먼 바다에. 기성시 2024.12.04
[시] 눈 오는 밤의 시 - 김광균 [시] 눈 오는 밤의 시 - 김광균서울의 어느 어두운 뒷거리에서이 밤 내 조그만 그림자 우에 눈이 나린다.눈은 정다운 옛이야기남몰래 호젓한 소리를 내고좁은 길에 흩어져아스피린 분말이 되어 곱-게 빛나고나타샤 같은 계집애가 우산을 쓰고그 우를 지나간다.눈은 추억의 날개 때묻은 꽃다발고독한 도시의 이마를 적시고공원의 동상 우에동무의 하숙 지붕 우에카스파처럼 서러운 등불 우에밤새 쌓인다.* 첫눈 올 날이 멀지 않았네요 좋아요 댓글 달기 기성시 2024.11.17
[박경리] 샤머니즘 노벨문학상 감인데 / 박경리 시 '샤머니즘' 중에서 앞부분 "우리는 지금 죽어가고 있습니다 // 당신은 생명과 형상과 법칙이 절묘하여 / 가까이 가려고 / 애쓰는 사람이 예술가입니다 // 가장 경외로운 존재 / 사람은 / 당신 속에서 신을 생각합니다 // 힘의 원천 / 억조창생은 / 당신의 힘을 / 조금씩 얻어서 살아왔습니다" // 이어서 후반부를 적어 본다 삶의 터전 / 죽음의 계곡 / 당신은 생과 사를 주관합니다 / 풀잎 한 가닥도 / 바람에 눕혀 살게 하시고 / 공정한 당신은 / 부성과 모성의 일체입니다 // 당신은 태양과 물과 흙의 3위1체입니다 / 일어나소서 // 3000년 잠을 깨고 일어나소서 / 잠 깨어 오소서 / 죽어가는 우리를 잡아주시고 / 오시어 / 생명을 찬미하소서// 기성시 2024.10.06
사랑하는 마음 - 랠프 월도 에머슨 사랑하는 마음 -랠프 월도 에머슨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다고 해서 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어느 장소에 있든 그를 바라보던 눈길과 사랑하는 마음은 그의 가슴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우리는 행복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어느 정도의 괴로움과 두려움이 더해져야만 두근거리는 심장으로 행복한 날을 추억한다 누군가는 사랑의 비밀을 이렇게 말한다 모든 기쁨이나 즐거움 중에서도 오직 사랑의 가치만이 어떤 고통이든 이겨낼 수 있다 기성시 2024.04.09
[헤르만 헤세] 안개 속에서 안개 속에서 - 헤르만 헤세 이상하구나,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 숲과 들이 모두 외롭고 나무들은 서로를 보지 않으니 모두가 다 혼자이어라. 내 삶이 빛으로 밝을 때에는 세상은 친구들로 가득했지만, 그러나 이제 안개가 드리우고 나니 누구 한 사람 보이지 않는다. 어둠은 조용히 피할 수도 없이 사람들을 격리시킨다. 이 어둠을 모르는 사람을 누가 현명하다 말할 것인가.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삶이란 정녕 고독한 것. 누구도 다른 이를 알 수 없으니 사람이란 결국 모두 다 혼자인 것을. 기성시 2024.03.04
[허난설헌] 애절한 봄노래 천재시인 허난설헌 - 애절한 봄노래 뒤뜰이 고요한데 봄비에 살구꽃은 지고 목련꽃 핀 언덕에선 꾀꼬리가 우짖는다. 수실 늘인 장막에 찬 기운 스며들고 큰 향로에선 한 가닥 향이 피어오르누나. 잠에선 깨어난 미인은 다시 화장을 하고 향기로운 허리띠엔 원앙이 수 놓였다. 옷소매를 걷고 비취이불을 갠 뒤 시름없이 은쟁반 안고 봉황의 노래를 탄다. 금 굴레 안장 탄 당신은 어디 가셨나요. 정다운 앵무새는 창가에서 속삭인다. 풀잎에서 날던 나비는 뒤뜰로 사라지더니 난간 밖 아지랑이 낀 꽃밭에서 춤을 춘다. 누구 집 연못가에서 피리소리 구성진가. 밝은 달은 아름다운 금술 잔에 떠 있는데 시름 많은 사람만 홀로 잠 못 이루어 새벽에 일어나면 눈물만 고이는구나. 기성시 2024.03.01
[정연복] 3월 첫날의 햇살 3월 첫날의 햇살 - 정연복 아직 매서운 추위가 바싹 고개를 쳐들고 있지만 오늘 햇살에서는 봄기운이 뚝뚝 묻어난다. 백삼 년 전 기미년 3월1일 그날도 삼천리 방방곡곡 밝은 햇살이 비추었을 거야. 목이 터져라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고 또 외쳤던 용맹스런 선조들의 얼굴마다 가슴마다 햇살이 찾아왔을 거야. 일제 식민지배의 잔재 여태 다 청산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어느새 보란 듯이 온 세계에 우뚝 선 대한민국. 이제 이 나라 이 땅의 한 사람 한 사람 너와 내가 참자유와 평화 또 민주의 희망 햇살이 되자. 기성시 2024.03.01
[서정주] 눈 오시는 날 눈 오시는 날 - 서정주 내 연인은 잠든 지 오래다. 아마 한 천년쯤 전에… 그는 어디에서 자고 있는지, 그 꿈의 빛만을 나한테 보낸다. 분홍, 분홍, 연분홍, 분홍, 그 봄 꿈의 진달래꽃 빛깔들. 다홍, 다홍, 또 느티나무 빛, 짙은 여름 꿈의 소리나는 빛깔들. 그리고 이제는 눈이 오누나… 눈이 와서 내리 쌓이고, 우리는 저마다 뿔뿔이 혼자인데 아 내 곁에 누워 있는 여자여. 네 손톱 속에 떠오르는 초생달에 내 연인의 꿈은 또 한 번 비친다 기성시 2024.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