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시 58

어느 가을, 친구 넷과 박연폭포에서 노닐다

-서경덕 품은 생각이 있으면 바로 시행해야지 / 백 년이란 세월도 오랜 것이 아닐세 읊조리며 지팡이 짚고 신선세상 들어가니 / 흰 구름이 옷 소매에 감기누나 경치 뛰어나면 시로 읊기도 하고 / 흥이 겨워지면 술잔을 들기도 하네 가을 깊어 계절 변화 느껴지고 / 나뭇잎 떨어지자 천지가 여윈듯 하네 여기서 단풍 놀이 어찌 즐겁지 않으랴! / 함께 온 이들이 모두 뛰어난 인재로다

기성시 2023.04.03

[긴스버그] 너무 많은 것들

백남준의 절친이고 고은 시인과도 친한 비트세대의 상징 알렌 긴스버그의 시 한 편을 소개한다. '너무 많은 것들'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너무 많은 공장들/너무 많은 음식/너무 많은 맥주/너무 많은 담배 너무 많은 철학/너무 많은 주장/하지만 너무나 부족한 공간/너무나 부족한 나무 너무 많은 경찰/너무 많은 컴퓨터/너무 많은 가전제품/너무 많은 돼지고기 회색 슬레이트 지붕들 아래 너무 많은 커피/너무 많은 담배연기/너무 많은 종교/너무 많은 욕심 너무 많은 양복/너무 많은 서류/너무 많은 잡지 지하철에 탄 너무 많은/피곤한 얼굴들 하지만 너무나 부족한 사과나무 너무나 부족한 잣나무/너무 많은 살인/너무 많은 학생 폭력 너무 많은 돈/너무 많은 가난 너무 많은 금속물질/너무 많은 비만/너무 많은 헛소리 하지만 ..

기성시 2023.03.24

[김광균] 눈 오는 밤의 시(詩)

눈 오는 밤의 시(詩) - 김광균. 금융 전문가가 이런 시를 쓰다니 놀랍다. "눈은 추억의 날개 때묻은 꽃다발" 시인은 하얀 눈을 하늘에서 외로운 이들에게 선물로 뿌려주는 꽃다발로 봤나요. 90년 전 시인데 여전히 신선한 감각이(?) 그는 말했다 “시란 회화다” 서울의 어느 어두운 뒷거리에서 이 밤 내 조그만 그림자 위에 눈이 내린다 눈은 정다운 옛이야기 남몰래 호젓한 소리를 내고 좁은 길에 흩어져 아스피린 분말이 되어 곱-게 빛나고 나타샤 같은 계집애가 우산을 쓰고 그 위를 지나간다 눈은 추억의 날개 때 묻은 꽃다발 고독한 도시의 이마를 적시고 공원의 동상 위에 동무의 하숙 지붕 위에 캬스파처럼 서러운 등불 위에 밤새 쌓인다. 1930년대

기성시 2022.12.22

[오장환] 나의 노래

이중섭 화가(1916~1956)와 오장환 시인(미술을 너무나 좋아한 시인, 이중섭보다 2살 아래 1918∼미상 *서정주와 이용악과 함께 3대 천재 시인으로 불림), 김광균 시인(가장 모던한 회화적인 시를 쓴 시인 이중섭보다 2살 위 1914~1993). 세 사람 요즘 말로 절친이었다. 모두 각각 근대의 화단과 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여 널리 알려진 인물들입니다. 한편, 이 세 사람은 서로의 친우이기도 하였지요. 화가와 시인들의 우정, 마음속에 떠오른 이미지를 화폭에 담아내는 것과 언어로 담아내는 것이 상당히 흡사한 작업이기 때문일까요? 어려운 단어가 전혀 안 들어간 오장환 시(나의 노래) 한 편을 감상해보자. 나의 노래 - 오장환 나의 노래가 끝나는 날은 내 가슴에 아름다운 꽃이 피리라 새로운 묘에는 옛..

기성시 2022.12.21

[김지하(Kim Chi-ha)] '지리산' 독일어 번역(1983)

80년대 독일에 있던 동생인지 누이인지 선물로 받는 것 같다. 당시 김지하는 세계적 시인으로 유럽에서 유명했다. [참고: 김지하는 1975년 아시아 아프리카 작가회의 로터스 특별상과 1981년 국제시인회 위대한 시인상, 브루노 크라이스키상을 받다]. 독일어로 번역된 그의 시 '지리산'이다. "내 분노가 타오른다(lodert mein Zorn) [...] 산 아래 아직도 붉은 피가 흐르고 있다(unter dem Berg das rote Blut fließt noch immer.)" 이런 문장이 보인다. Jiri-san Der schneebedeckte Berg- ah, wenn ich ihn sehe, kocht mir's in den Adern. Das grüne Bambusdickicht - ah, w..

기성시 2022.12.11

[소동파] 꿈꾸다가 이 시를 짓다-

꿈꾸다가 이 시를 짓다- 明月如霜(명월여상) :밝은 달은 서리 같고 好風如水(호풍여수) :좋은 바람은 물같구나 清景無限(청경무한) :맑은 경치 끝없는데 曲港跳魚(곡항도어) :굽은 항만에 물고기 뛰어논다 圓荷瀉露(원하사로) :궁근 연꽃에 이슬 쏟아져도 寂寞無人見(적막무인견) :적막하여 보는 사람 아무도 없도다 紞如三鼓(담여삼고) :북치는 소리 삼경인 듯 鏗然一葉(갱연일엽) :떨어지는 나뭇잎 소리 黯黯夢雲驚斷(암암몽운경단) :어두운 꿈속 구름에 놀라 깬다 夜茫茫(야망망) :밤은 망망하여 重尋無處(중심무처) :다시 찾을 곳이 없구나 覺來小園行遍(각래소원행편) :깨어나 작은 동산을 두루 걷는다 天涯倦客(천애권객) :하늘끝 지친 나그네 山中歸路(산중귀로) :돌아가는 산 속 길 望斷故園心眼(망단고원심안) :떨어진 ..

기성시 2022.08.25

[옥타비오 파스] '둘이 키스하면 세계가 변한다'

남녀의 교합은 우주의 질서에 참여하는 거룩한 퍼포먼스다. 동양에서 말하는 음양의 조화를 완성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생명이 태어나는 것이기에 인간사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지만 지금과 같은 자본의 신이 지배하는 시대에는 이것이 많이 왜곡되고 상업화되어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큰 요소로 작용한다. 멕시코 노벨문학상 수상자 시인 옥타비오 파스(1914~1998년 위 사진) 이런 점을 이렇게 통렬하게 풍자하는 시를 쓰다. 그는 자신은 살아 있으나 가면을 쓴 죽음과 같다고 비유하며 그의 유명한 시집 ‘태양의 돌’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 수천 년 전에 생의 도둑에게 빼앗겼던 / 우리들의 재산을 되찾으려는 듯이 / 둘은 옷을 벗고 키스했다 / 뒤엉킨 두 알몸은 / 시간을 초월하여 영원하다 / 아무도 접근할 수 없다 ..

기성시 2022.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