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시

프랑수아 비용(1431~1463?) 유언시 중

김형순 '스키타이' 2023. 11. 30. 11:13

우리 죽은 뒤 살아갈 형제들이여

우리에게 냉혹한 마음을 품지 말라

차라리 그대들 우리를 불쌍히 여길 때

신께서는 곧 그대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리라

보라 여기 우리들 다섯 여섯씩 목매달려

포식으로 길러온 육체는

이미 오래 전에 뜯어지고 썩어지고

우리의 해골은 진토가 되어간다

아무도 우리의 비운을 비웃지 말라

다만 신께 구하라 우리 모두의 죄를 사해줄 것을!

우리 비록 법으로 처형된 몸이나

그대들을 형제라 부름을 탓하지 말라

인간이 모두 옳은 생각만을 가질 수 없는 일

이는 그대들도 알고 있다

이미 우리는 죽은 몸이니 용서하고

성모 마리아의 아들께 기도드리라

우리에게 내리는 그의 은총이 마르지 않고

지옥의 불길에서 우리를 지켜주도록

우리는 죽은 몸 누구도 우리를 괴롭히지 말고

다만 신께 구하라 우리 모두의 죄를 사해줄 것을 !

빗물은 우리를 적셔 씻겨내고

햇빛은 우리를 말려 검게 태운다

까치와 까마귀는 우리의 눈을 파내고

수염과 눈썹을 쪼아낸다

우린 잠시도 쉴 때가 없다

바람이 부는 대로

이리저리 한없이 흔들리며

새 쪼아 먹은 몸은 골무보다 더 험상궂다

그러므로 행여 우리 같은 신세 되지 말고

다만 신께 구하라 우리 모두의 죄를 사해줄 것을!

만백성을 주관하는 왕자 예수시여

지옥의 권세에 들지 않도록 우리를 지키시고

그곳에서 할 일도 갚을 것도 없게 하소서

사람들이여 이 일은 절대 비웃을 일이 아니니

다만 신께 구하라 우리 모두의 죄를 사해줄 것을

프랑수아 비용(1431~1463 ? ) 프랑스 중세 최대의 서정시인 그는 사기꾼이고 방랑자이며 살인자였지만 감정의 성실성으로 가득찬 소유언집(1456) 대유언집(1461) 이 있다 그의 순탄하지 않은 삶에 녹아내린 고통의 결실은 후에 보들레르와 베르렌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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