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천 상병] 없는 대한민국 무슨 재미로 사나

김형순 '스키타이' 2022. 7. 12. 08:41

아침밥을 먹던

대한민국의 빼어난 시인 천 상병이 오늘 죽었다.

아니, 죽은 것이 아니라

한 마리 새 되어 하늘로 날아간 것이다.

 

천상 시인이라고

일컬어지던 그가

무명의 죽음을 그리도 진혼하던 그가

자신이 죽음의 강줄기 되어

우리의 삶에 힘과 빛이 되려고 귀천하였다.

 

일곱 살배기 시인에게

대한민국은 간첩의 누명과 정신 병동밖에 준 것이 없건만

그처럼 이 나라에 사는 기쁨과 환희를 노래한 시인이 어디 있나!

그처럼 이 나라의 꽃과 새와 구름과 바람을 사랑한 애국 시인이 어디 있나!

 

천 상병이 없는 대한민국 무슨 재미로 사나!

봄과 아침과 아이들의 꿈과 웃음을 그리도 아끼더니

살아 있다는 것의 기적과 경이를 그리도 노래하더니

우리보다 먼저 가셨다.

 

그의 죽음은

대한민국 어느 대통령의 죽음보다 1억 배나 더 슬프다.

 

대한민국 사람들아!

오늘은 통곡하지 말고 침묵하자!

 

구슬프다 못해 구수하기까지 한 타령의 노래 듣기 위해

차비가 없어 저승도 못 간다고 호들갑을 떨던 그의 익살을 헤아리기 위해

가난해야 행복하다며

시와 술과 노래를 벗 삼아 취해 살았던 그가

 

맨 꼬래비 자리에서도, 우리 시대 가장 사랑받는 시인으로

삶의 열애가로, 인간의 찬미가로, 순수 언어의 음악가로 살았던 그가

오늘 이승의 소풍 세상 끝내고 저승의 소풍 세상으로 가셨으니

우린 언제쯤이나 그의 노래를 따라 불러 볼까? 1993.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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