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즉흥시] <가을바람>

김형순 '스키타이' 2024. 10. 30. 16:44
[즉흥시] <가을바람>
쓸쓸한 가을바람
차갑게
내 이마를 스치고
멀리 검붉은 노을이
물드는 것이
차라리
장엄하게 보이는 것도
오늘은
적막한 가을바람마저도
풍요롭게
느껴지는 것도
아파트가
하찮은 건물이 아닌
설치미술처럼
착시가 일어나는 것도
거리에
낮게 서 있는 가로등이
둥근 보름달처럼
정겹게 다가오는 것도
다 그대 때문이다
지금 부는
차가운 가을바람이
허무한 게 아니라
차라리 상서럽게
생각되는 것도
아이들 노는
유쾌한 소리에
얇아가는 내 육신의
혈기와
생기를 넣어주는 것도
주변 동네 건물이
전시장에 와 있는 듯
다 그림처럼 보이는 것도
소리 없이
바람에 스쳐
떨어지는 낙엽소리가
시냇물 소리 들리는 것도
동네 작은 꽃가게는
내 그리움을 피워내는
천국 같이 보이는 것도
주머니가 비어도
슈퍼에서 파는 토마토
하도 탐스러워
몇 개 사게 되는 것도
내 이마를 스치는
허전한 가을바람은
차라리
장엄하게 느껴지는 것도
다 그대 때문이다
내 머리를
꼭꼭 찌르는 것 같은
두통이 불규칙하게
스치고
가끔 어지럼증으로
내 몸에 말을 걸어와도
오늘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시켜주는
외로움과 서러움이
허전한 옆구리처럼 지나가도
모든 것이
아름답고 풍요롭게
느껴지는 것도
다 그대 때문이다
2017.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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