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강교에서 - 이현우
강은 차라리 흘러가지 않는다.
흘러가지 않는 강을 바라보며
나는 울고 있고,
언제부턴가.
나의 불행한 젊음은
폐허의 하늘 아래 잠들고,
그리하여
나는 시를 쓰고, 술을 마시고,
또 인생이 무엇인가를
열심히 생각해 왔다.
지금
나의 시야에 비치는 강은
먼 옛날로 흐르고 있다.
강을 굽어보며 울고 간
서러운 사람을
나는 생각해야 한다.
오! 기욤 아폴리네르.
그의 기구한 생애와
굴욕의 편력을 거듭한
나의 죽어간 나날을 생각해야 한다.
시일은 흘러가고
우리들 사랑은 죽어가도
언젠가
내 곁에서 울고간 그 사람,
그 황금빛 머리카락을 기억해야 한다.
아, 나는 다시 망각해야 한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무너진 한강교에서
실로 내가 느끼는 이 회한, 이 고뇌를,
서울의 하늘 아래
회한 없이 묻혀 간
나의 기묘한 생활,
이 부질없는 시편(詩篇)들을.
- 1957. 10. 동국시집 제6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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