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시

[서정주] 눈 오시는 날

김형순 '스키타이' 2024. 2. 14. 07:03

눈 오시는 날 - 서정주

내 연인은 잠든 지 오래다.

아마 한 천년쯤 전에

그는 어디에서 자고 있는지,

그 꿈의 빛만을 나한테 보낸다.

분홍, 분홍, 연분홍, 분홍,

그 봄 꿈의 진달래꽃 빛깔들.

다홍, 다홍, 또 느티나무 빛,

짙은 여름 꿈의 소리나는 빛깔들.

그리고 이제는 눈이 오누나

눈이 와서 내리 쌓이고,

우리는 저마다 뿔뿔이 혼자인데

아 내 곁에 누워 있는 여자여.

네 손톱 속에 떠오르는 초생달에

내 연인의 꿈은 또 한 번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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