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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희랍어 시간 맨 마지막 시

나는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은다. - 희랍어시간 맨 마지막 장(시)혀끝으로 아랫입술을 축인다.가슴 앞에 모은 두 손이 조용히, 빠르게 뒤치럭거린다.두 눈꺼풀이 떨린다. 곤충들이 세차게 맞비비는 겹날개처럼.금세 다시 말라버린 입술을 연다.끈질기게, 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쉰다.마침내 첫 음절을 발음하는 순간, 힘주어 눈을 감았다 뜬다.눈을 뜨면 모든 것이 사라져 있을 것을 각오하듯이.

기성시 2025.01.19

[백남준] 몽골텐트(The Mongolian Tent) 1993 베니스비엔날레 작품

백남준 몽골텐트(The Mongolian Tent) 250*500cm 1993 베니스비엔날레 출품작 중 하나이다. 텐트 안에는 중생들이 일체의 소유로부터 자유롭기를 바라는 부처가 있다. 이 작품의 재료:Felt tent, brone masks, empty TV monotors hay, candle, Buddha figure 뮌스터미술관소장 © LWL Museum 백남준 인류구원의 비상구나 관문으로 모든 것을 털고 가는 무소유적 삶의 양식인 유목사회를 제시하다. 여기에 쓰인 재료는 역시 원시적 생명력을 강력하게 풍기는 오브제가 주 재료가 된다. 백남준 새로운 뉴미디어의 등장하는 시대에도 불구하고 유목적 디지털 세계를 논하다. 동시에 워홀과 리히터와 폴케는 반대로 개인성을 더 강조하다.미술전문지 편집장 클라..

[구파발] 1984-1986

유럽 위기를 주제로 한 40년 전에 쓴 시다. 여기서 구파발은 오늘날의 한류이고 / 구라파는 몰락하는 유럽제목은 '구파발' 이다 지금 유럽은 분명히 위기다.구파발 / 가는 길에도구라파가 / 어른거릴 때가 있다 구파발이 / 눈물겹게 그리워 온 맘이 뒤흔들릴 때도구라파가 / 얼핏 보일 때가 있다 구파발을 / 두루 지나다니면서도잠깐씩 눈에 떠오르는구라파의 뒷골목을 / 지우는 못하는 때가 있다 구파발로 가는 길은 / 내가 살러 가는 길구라파로 가는 길은 / 내가 팔려가는 길 구파발로 가자 / 냄새나는 옛 장터 같은구라파를 버리고 / 새 삶터인구파발로 가자 1986.07.11아래>노트르담성당에서 내려다본 파리전경. 에펠탑과 라데팡스 신시가지가 멀리 보인다

자작시 2024.12.19

[즉흥시]광화문 촛불거리굿

[즉흥시]광화문 촛불거리굿광화문 앞바다에거대한 민주화의 물줄기가유유히 흘러가고 있다'한영애'는우리가 꿈꾸는아리랑 세상을 노래하고 있다연속되는촛불 파도타기 속군중의 함성이 폭발해청와대의 천장까지 흔들고 있다서정주는 광화문을'소슬한 종교'라고 노래했는데청와대 앞 광화문의 밤이이렇게 아름다울 줄 몰랐다딸과 함께 나온어머니도처음 시위에 나온 것 같은데촛불 피킷을 들고딸이 찍어주는 인증샷 앞에서딸보다 더 어리게행복하게 웃고 있다이순신장군이애국심으로 불타는충혼의 촛불 시위대를진두지휘하고 있다중2의 자유발언30년 후 여러분은국정교과서의함정에 빠지지 말라고 해배꼽을 잡았다자유발언이 초등생이 주이고중고생은 뒤를 따른다초등생이 나오면혁명은 끝난 것이다419혁명 때도 초등생이 주동자였다오늘 12월 3일 시위 분위기가정말 심..

자작시 2024.12.04

[시] 눈 오는 밤의 시 - 김광균

[시] 눈 오는 밤의 시 - 김광균서울의 어느 어두운 뒷거리에서이 밤 내 조그만 그림자 우에 눈이 나린다.눈은 정다운 옛이야기남몰래 호젓한 소리를 내고좁은 길에 흩어져아스피린 분말이 되어 곱-게 빛나고나타샤 같은 계집애가 우산을 쓰고그 우를 지나간다.눈은 추억의 날개 때묻은 꽃다발고독한 도시의 이마를 적시고공원의 동상 우에동무의 하숙 지붕 우에카스파처럼 서러운 등불 우에밤새 쌓인다.* 첫눈 올 날이 멀지 않았네요  좋아요  댓글 달기

기성시 2024.11.17

[시] 바다와 나비 -김기림

[시] 바다와 나비 -김기림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청(靑)무우 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공주(公主)처럼 지쳐서 돌아온다.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어떤 주] 하얗고 연약한 나비와 시퍼렇고 거대한 바다가 선명한 시각적 심상의 대비를 이뤄 냉혹한 현실과 좌절된 나비의 꿈을 노래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카테고리 없음 2024.11.17

[시] 젊은 시인의 죽음 -김광섭

[시] 젊은 시인의 죽음 -김광섭-고(故) 박인환(朴寅煥)을 묻고 돌아온 밤고요히 말없이 봄비를 받아첫날밤의 눈물로 삼는가흙은 풀린 자리에 태몽을 안고영생의 푸른 잔디를 마련하며멀리 산과 뫼를 부르고 전하여돌아온 육신자의 영혼을 재운다보라 이 사람을 잠시 동안 그가지상에 머물렀던 자취를빛을 보면서 눈을 감고허물어질 벽에 기대이던 곳을이제 그는 가난한 양식의 배정을 끊고한 벌 옷조차 벗고 갔다이로써 죽음은 끝나고 생 이전이 실현되나니아침 저녁 품은 꿈은 젖은 흙에 돌아가 묻힌다

카테고리 없음 2024.11.17

지금은 축제의 도가니

지금은 축제의 도가니-즉흥시시청 앞 광장거대한 물결이다촛불의 바다이다거기에남녀애 같은꽃밭이 피다인류애 같은별빛이 뜨다소리 없는깊은 강이흐르고 있다그 강줄기어디로 갈지 모른다백남준이 말하는랜덤 엑세스다인간에게는이런 해방경험이 중요하다610항쟁의 재현이다그러나그때와는 다르다하드웨어가아니라 소프트웨어다비폭력평화 촛불이다웃음이 무기이다걷는 게 시위이다다른 것은 필요없다위선자들의뚝이 무너졌다막힌 물이다시 흐리기 시작했다평등세상대동세상을 만드려고100백만이 촛불을 들었다그런데 누가이 많은 사람들 모이게 했나날씨마저 온화해하늘이 돕고 있다사랑이 증오를이길 수 있음을 보여줬다여기서는자신만 원하면누구도소외되지 않고배제되지 않는다비정규직은 물론 없고인간의 차별도 없다87항쟁 30주년을앞둔 일종의 워밍업이다시위의 아름다움그..

자작시 2024.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