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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젖으로 연명하다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1931~2015) - 스웨덴 시인 노벨상 수상 암울한 몇 개월 동안, 내 삶은 당신과 사랑을 나눌 때만 불타올랐다. 개똥벌레가 점화되고 꺼지고, 점화되고 꺼지듯이. 밤의 어둠 속 올리브나무 숲속에서 눈여겨보면 개똥벌레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 있다. 암울한 몇 개월 동안, 영혼은 움츠러들고 망가진 채 앉아 있었다. 하지만 육신은 당신을 향한 직선 통로를 택하였다. 밤하늘이 울부짖었다. 우리는 우주의 젖을 훔쳐 먹고 연명하였다. 시는 죽었는가 시는 죽었는가. 아니다. 시는 어디에 있는가. 여기 있다. 저기에 있다. 또한 시가 없는 곳에도 시가 있다. 인류의 시작과 함께 있는 시. 인류의 오랜 삶과 함께 있는 시. 인류가 사라질 때 함께 사라질 시. 그리하여 시는 이 지상의 처음과 끝이다..

기성시 2022.01.19

장자와 백남준

與物爲春: 일체의 사물을 봄과 같은 따뜻한 마음으로 포용하라! - 장자. 신석기 시대 무당처럼 한바탕 놀이판을 열려면 판 자체가 즐겁고 해맑아야 한다. -강신주 장자 왈, "마음이 조화롭고 즐겁도록 하고 타자와 연결하여 그 즐거움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밤낮으로 틈이 없도록 하여 타자와 더불어 봄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런 사람이 바로 타자와 마주쳐서 마음에 봄이라는 때를 생성시킬 수 있는 자다. 使之和豫, 通而不失於免, 使日夜無卻而與物爲春, 是接而生時於心者也. (莊子』, 「德充符」.) 장자와 백남준 어떠한 상황에서도 축제를 일으키는 사람들. 그런 면에서 둘은 통한다. 장자는 타자와 더불어 봄이 되어야 한다 고 했고 백남준은 예술가란 무당처럼 한바탕 즐거운 놀이판을 벌려 대중을 유혹해야 한다 고 ..

에세이 2022.01.15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

미라보 다리(Le Pont Mirabeau) -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은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흐르다. 나는 또한 기억하고 있나니, 기쁨은 언제나 고통 뒤에 온다는 것을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손에 손을 잡고서 얼굴을 마주 보자. 우리들 팔 아래로 미끄러지는 물결의 영원한 눈길이 지나갈 때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사랑은 흘러간다.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은 흘러간다. 삶이 그렇게 느리듯 산다는 것의 희망은 얼마나 강렬한가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날이 가고 세월이 지나면 가버린 시간도 옛 사랑도 돌아오지 않고 미라보 다리 아래 센느 강은 흐른다. 밤이여 오라..

기성시 2022.01.04

샤갈, 꿈과 환상의 세계

샤갈, 꿈과 환상의 세계 - 서울 샤갈 전(1993년 호암)에 부쳐 - 꿈, 환상, 飛上 염소, 樂師, 바이올린 꽃, 연인, 광대 혼례 잔치, 삶의 환희 화가에게 영감을 주는 이들 시적 상상의 세계, 생의 도취적 열망 그의 예술엔 일체의 죽음이 없다. 하늘에 핀 꽃, 나는 새 에펠탑, 노트르담의 미소 에덴의 동쪽나라, 신세계 첫 키스의 눈멂 혼인의 가슴 두근거림이 넘치는 사랑가 신부의 흰 드레스 그리고 어린 시절 꿈 되찾는 신랑의 행복 인생의 곡예사 거리의 사람들 어둠이 들어설 데 없는 평화의 터전 세속 도시 빠리까지도 아리따운 신부와 함께 승천한다. 아를캥, 광대 기질, 세속적 성스러움. 빛의 탄생 입체파 감동적 성서 메신저 러시아의 검은 밤 하얀 꿈이 프랑스에 와선 회상의 푸른 숲이 되고 초록 밤이 ..

자작시 2022.01.01

[화담 서경덕] 거문고에 새긴 글

琴銘(금명) 거문고에 새긴 글 - "사악함을 씻어냄으로써 자연과 융화되는 사람이 된다" 1. 鼓爾律, (고이율) 그대의 가락을 뜯으며 樂吾心兮, (락오심혜) 나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諧五操, (해오조) 여러 가지 곡조를 고르되 無外淫兮 (무외음혜) 밖으로 지나치진 않는다. 和以節, (화이절) 강단으로써 조화시키어 天其時兮, (천기시혜) 날이 가고 사철이 바뀌듯하며, 和以達, (화이달) 통달함으로써 조화시키어 鳳其儀兮. (봉기의혜) 봉황새도 법도를 따라 춤추게 한다. 2. 鼓之和, (고지화) 그것을 뜯어 조화시킴으로써 回唐虞兮, (회당우혜) 요순시대로 돌아가며, 滌之邪, (척지사) 사악함을 씻어냄으로써 天與徒兮. (천여도혜) 자연과 융화되는 사람이 된다. 操?洋, (조아양) 높다란 소리?넓은 소리를 타지마..

기성시 2021.12.31

[열등생(Le Cancre)] -자크 프레베르

열등생 –자크 프레베르 그는 머리로는 (열등생이) '아니오'라고 말한다. 그러나 가슴으로는 '그렇다'라고 말한다. 그는 좋아하는 것에 대해선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선생에게는 '아니오'라고 말한다. 선생이 그를 세워 별의별 질문을 다 던진다. 문득 미친 웃음이 그를 사로잡는다. 그는 멍해져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의역, 갑자기 그는 머리가 하얘진다) 숫자도 단어도 날짜도 이름도 문장도 함정도 교사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우등생 아이들의 야유에도 아랑곳없이 그는 모든 색깔의 분필을 들고 불행의 칠판에 행복의 얼굴을 그린다. -자크 프레베르, '열등생' 전문 [하나의 해설] (교실에서) 열등생은 머리로는 열등생임을 인정하지만, 가슴으로는 인정하지 않는다. 사회의 열등생인 시인 자신은 사실은 사람들 마음에..

기성시 2021.12.30

'사랑가(Love Song)'

춘향전, 한국문학의 보고다. 그 풍부하고 유머러스한 어휘에 기절하게 된다. [사랑가] 하루 이틀 지나가니 신맛이 새록새록 부끄럼 차차 멀어진다. 희롱도 하고 농담도 하니 저절로 '사랑가' 되었구나. 사랑으로 노는데 똑 이 모양으로 놀것다.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동정호 칠백 리 달 밝은 밤에 무산巫山 같이 높은 사랑, 아득하고 끝도 없는 바다같이 깊은 사랑, 가을날 달 밝은 밤 이 봉우리 저 봉우리 달구경 하던 사랑, 어여쁜 여인 춤 배울 제 한 선비 퉁소 불어 신선 되기 바라던 사랑, 따사로운 봄날 밤에 달빛이 교교할 때, 주렴 사이 복숭아꽃 배꽃 비추는 사랑, 여리고 고운 초생달 아래 은은한 미소 요염한 자태 어여쁘다. 숱한 사랑, 월하노인(月下老人) 중매하여 삼생 연분 맺었으니 너와 내가 만난 ..

기성시 2021.12.29

[뉴욕] 나의 체질-New York this is my style

[낙서시] 뉴욕은 지랄 같은 것도 자연스럽다 - 뉴욕은 나의 체질-New York this is my style 뉴욕은 지랄 같은 것도 자연스럽다 뭐 하나 거칠 것이 없다 그냥 인간이 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가 다 보장된다 워싱턴 반나절도 지루해 나는 뉴욕 체질이다 무질서와 혼란 거리에 쓰레기 천지 그래도 전혀 문제가 없다 다먄 조금 느리게 처리할 뿐이다 카오스의 전시장 백남준의 유토피아다 그런 것을 보면 예술가들 상상력이 팍팍 솟는다 누구에게 말을 걸어도 그 나름의 개성이 있다 어제는 한국, 일본을 다녀온 일러스트레이터를 만났는데 몇마다 배운 한국어를 열심히 자랑한다 여기서는 혼란스러운 정도로 다양하다 체코 사람 폴란드 사람 브라질 사람 전혀 국명을 알아먹을 수 없는 나라에서 사람도 만난다 여행자가 되..

자작시 2021.12.26

[윤동주] 16살, 크리스마스 이브에 쓴 시

초 한 대 – 윤동주 그가 16살 크리스마스이브에 쓴 시. 그는 천상, 시인이다. 초 한 대 내 방에 풍긴 향내를 맡는다. 광명의 제단이 무너지기 전 나는 깨끗한 재물을 보았다. 염소의 갈비뼈 같은 그의 몸, 그리고도 그의 생명인 심지(心志)까지 백옥 같은 눈물과 피를 흘려, 불살라 버린다. 그리고도 책머리에 아롱거리며 선녀처럼 촛불은 춤을 춘다. 매를 본 꿩이 도망가듯이 암흑이 창구멍으로 도망간 나의 방에 풍긴 제물의 위대한 향내를 맛보노라. * 윤동주가 16살 크리스마스이브에 쓴 시죠. 그의 처녀시인가요 예수가 자신 몸 태워 희생하는 순교자적 모습 형상화, 암흑 같은 세상에 빛이 들어오는 창구멍을 내는 자가 예수였나. 나의 부친은 윤동주와 연전 동기동창, 윤동주는 문과, 부친(김갑권)은 이과(화공과)..

기성시 2021.12.23